우리의 첫 만남은 중학생 때였다. 새 학년이 되고 처음으로 책상 자리를 바꿀 때, 내가 탐내던 창가 자리를 독차지한 너. 무리에서 홀로 떨어진 너는 친구들의 놀림을 웃으며 맞받아쳤다. 떠들썩한 자리 이동 시간, 남들 몰래 토라진 네 얼굴을 나 홀로 봤다. 항상 웃고 시끄러운 모습만 보이던 네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해 한동안 쳐다봤다. 너는 ...
44) 두 사람은 열심히, 신나게 놀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털어버리려고 술도 거의 의무적으로 마셨다. 마시다 마시다 딱 기분 좋을 때 술이 떨어져서 둘이서 헬렐레 낄낄거리며 편의점 술 코너를 쓸어왔다. 다현이 주헌은 안주를 만들었으니 자신은 술 제조 솜씨를 뽐내보겠다며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내일 먹을 것도 사고 편의점 봉투 그득하게 술을 쓸어왔다.냉장고...
38) 잠을 많이 못 잔 건 아니지만 반나절 가까이 신경을 곤두세웠고, 맨바닥에 자느라 잠자리는 불편, 소리죽여 펑펑 울어서 눈은 퉁퉁 부었고 옅은 두통이 일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 데다가 어제랑 똑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니 짓궂은 동료들의 놀림에도 시달렸다.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당장 집으로 가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다현을 보러가 마시는 술 때문에 오래...
36) 요새 가게 에어컨이 너무 빵빵하다 했다. 아직 여름도 아니고 환절기에 무슨 에어컨을 이렇게 틀어대? 어렸을 때보다 튼튼해지긴 했지만, 다현은 여전히 환절기만 되면 골골댔다. 눈이 빠지게 바빠서 가게에서는 추운 줄도 몰랐다. 에어컨을 그렇게 세게 트는 지도 몰랐다. 며칠 전, 주헌과 뒷문에서 담배 한 대 피우며 느낀 으슬으슬한 기운을 그냥 넘겨서는 안...
31) "다현 씨,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내일 봐요.""네, 사장님. 조심히 들어가세요."다현은 자기에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사장을 향해 목례로 인사했다. 어둠 깊은 새벽, 여름이었다면 겨우 두, 세 시간 뒤에 어슴푸레해질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현의 입가로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다행이다. 아침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다현이 제대 후 복학하면서부터 아르바이...
27) 엄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달달 볶아도 유주헌의 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자 엄마는 노선을 바꿔 개학하기를 기다렸다. 다혜가 우리 반에 왔다. 뾰로통한 얼굴로 우리 반에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유주헌에게 인사했다."안녕.""어, 안녕. 몸은 괜찮아? 3일이나 입원했었다며.""응. 놀라고 더위 먹어서 그랬대. 그…… 음…… 그때 도와줘서 고마워."유주헌이 ...
24) 저녁 느즈막히 일어나니 조금 살만 했다. 천둥번개는 멎었지만,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렸다. 내가 잠든 후, 따라서 낮잠을 자고 일어난 유주헌은 계획보다 조금 일찍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덕분에 일어나니 집이 제법 깨끗했다. 미안해 죽으려는 날 보고 유주헌이 그럼 집에 가다 휴게소에서 자기 먹고 싶은 거 두 개만 사달라고 했다. 콜.우리는 낮동안 못 ...
20) 고3. 절대 놀면 안 될 것 같은, 놀면 큰일날 것 같은, 하지만 마지막 여름방학을 화끈하게 불태우고 싶은데 돈이 없어 쭈글쭈글해진 문제집이나 풀고 있는 우리는 고3이었다. "입 심심하지 않냐? 뭐 먹을 거 없나 보고 와야지~""너 화장실 갔다와서 다섯 문제도 안 풀었어.""이렇게 더운데 글자가 눈에 들어오겠냐!"활짝 열어둔 방문 밖으로 나가려다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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